안창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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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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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포맷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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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크기265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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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사예스이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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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PC, 프로그램 수동설치, 뷰어프로그램 설치 안내
도서소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총과 칼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일제강점기 어느 누구보다 빼앗긴 나라를 아파했고,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며,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한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질곡진 시대를 건너온 그의 삶은 지난했지만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나라, 모두가 주인이며 주인으로 하나 된 민족을 만들려 한 그의 삶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의 연설이 그렇듯 그가 남긴 글들 역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한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없을 것이다.”
질곡진 시대를 건너온 그의 삶은 지난했지만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나라, 모두가 주인이며 주인으로 하나 된 민족을 만들려 한 그의 삶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의 연설이 그렇듯 그가 남긴 글들 역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목차
대한 학생들에게
혈전
비관적인가 낙관적인가
우리 민족 사회를 불평하는가 측은해 하는가
여러분은 주인입니까
합동과 분리
무정한 사회와 유정한 사회
지도자
부허에서 떠나 착실로 가자
우리 혁명 운동과 임시정부 문제에 대하여
오늘의 대한 학생
대한 청년의 용단력과 인내력
사업에 대한 책임감
오늘 할 일은 오늘에
청년에게 호소함
헌신적 정신의 배양
혈전
비관적인가 낙관적인가
우리 민족 사회를 불평하는가 측은해 하는가
여러분은 주인입니까
합동과 분리
무정한 사회와 유정한 사회
지도자
부허에서 떠나 착실로 가자
우리 혁명 운동과 임시정부 문제에 대하여
오늘의 대한 학생
대한 청년의 용단력과 인내력
사업에 대한 책임감
오늘 할 일은 오늘에
청년에게 호소함
헌신적 정신의 배양
저자소개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애국 계몽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호는 도산이다.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한학을 배웠으며,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서구문물과 기독교 정신을 습득했다. 20살 때인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한 후 이듬해에 서울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민권운동을 주도했으며, 1900년대 초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하며 교포들의 계몽활동에도 힘썼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귀국해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대한인국민회의 활동에 참여했으며,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설했다. 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대리, 노동총장으로 활동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에 연루되어 2년 6개월을 복역했으며, 1937년에는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듬해인 1938년 3월 간경화증으로 생을 마감하며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했다. 시신은 서울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에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1878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어릴 적 한학을 배웠으며,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서구문물과 기독교 정신을 습득했다. 20살 때인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한 후 이듬해에 서울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민권운동을 주도했으며, 1900년대 초반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대한인공립협회를 설립하며 교포들의 계몽활동에도 힘썼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귀국해 비밀결사체인 신민회를 조직했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대한인국민회의 활동에 참여했으며, 19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설했다. 3·1운동 이후에는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대리, 노동총장으로 활동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에 연루되어 2년 6개월을 복역했으며, 1937년에는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듬해인 1938년 3월 간경화증으로 생을 마감하며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했다. 시신은 서울 망우리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에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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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날짜 2024-11-12
아이디 xh_records
Do you remember?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너를, lost and just fallen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던 상처들도 이젠 다 nothing, nothing, it’s nothing 별다른 말은 또 없었지, 침묵으로 나눈 맘 We’re young and so stupid, we’re young and so stupid, whoa 비록 갈 길은 더 아프게 우릴 찌르겠지만 어찌 보면, 너라서 다행이야 (oh) 희망이란 말로 포장하고 뻔한 거짓말로 피해 가는 것 Let’s be true I’ll tell you nothing, but the truth Do you remember? 어리고 부끄럽고 바보 같은 너를, lost and just fallen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던 상처들도 이젠 다 nothing, nothing, it’s nothing